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추모글 남기기



■ 5/5 강화도와 인천 드라이브


대한민국 2009.05.09 16:03

5월 5일 어린이날, 별 생각없이 차를 몰아 강화도로 향했다. 강화도는 서울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웬지 몇 번이고 가보고 싶은 곳이다. 아마도 고려 시대 치열했던 대몽 항전(....이라고 해봐야 왕실과 최씨 무인정권은 틀어박혀 있는 게 전부였지만)의 상징이자 병인양요, 신미양요의 치열한 격전지였던 것때문이 아닐까 싶다. 애초에 뭔 여행을 가겠다고 떠난 게 아니라 골치아픈 일들이 많아 바람이나 쐬자고 간 것이라 특별히 목적지도 없었다. 단지 달리고 싶었을 뿐이었다. 발길 가는 대로 가보자고 작정하고 달리니 어느 새 강화도다.

강화대교를 넘자마자 해안도로로 차를 돌렸다. 그냥 직진해서 강화 고인돌부터 보는 건데. 강화도 동쪽 해안에는 조선 시대에 축성된 각종 진, 보, 돈대 중에서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가 있다. 초지진과 덕진진은 예전에 가본 것 같기도 하고 (강화도를 마지막으로 가본 것이 9년 전 일인데, 그때는 필름 자동 카메라를 썼다. 현상 비용이 만만찮아서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필름을 잃어버렸다) 광성보가 가장 가까워서 광성보부터 찾았다. 광성보는 이번에 처음 가본 곳이다.

광성보는 신미양요때 어재연 이하 조선군 350여명이 전멸한 곳이다. 이때 미군은 고작 3명이 죽은 게 전부였다. 광성보를 점령한 미군은 어재연 장군의 수자기를 노획하여 본국으로 가져갔는데, 2년 전인 2007년에 신미양요 당시 미군이 노획해 가져간 수자기의 국내 반환 문제를 둘러싸고 한동안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이 수자기를 공식 소유한 당사자는 미국 해군이며, 대신 장기 대여 형식으로 2008년 6월에 특별 전시회를 가진 적은 있다. 광성보에 얽힌 이런 저런 이야기는 다음 사이트 들에서 참고할 수 있다. 대충 내용들은 비슷비슷하다.

NIKON D90 | 2009:05:05 15:07:19

[사진01] 광성보의 성문, 안해루.


과거에는 문수산성(이곳도 가봐야 하는데) 한강 하류를 잇는 강화해협에서 중요하고 긴장감이 감도는 군사 기지였겠지만, 지금은 잘 다듬어진 공원이다. 성문 위에 세어진 누각은 "안해루"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성문을 나가면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고, 바로 옆에는 광성돈대가 있다.

광성보는 광성보 1개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고 주변 여러 돈대가 포함되어 있다. 돈대는 오늘날로 치면 GOP 벙커같은 존재다. 광성보 역시 손돌돈대, 용두돈대, 광성돈대, 오두돈대, 화도돈대 등을 부속시키고 있으나, 현재 광성보와 직접 연결된 돈대는 손돌돈대, 용두돈대, 광성돈대뿐이다. 과거에는 성벽이 어디까지 연결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원래 광성보는 고려 시대에 축성된 외성을 개조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안해루를 포함한 광성보의 전체 모습을 보는 것이 좋겠다.

[사진02] 광성보 전체 모습. (위성 사진 출처 : 구글 맵)


1번이 광성돈대다. 표시는 안했지만, 광성돈대와 붙은 것이 안해루다. 2번은 손돌돈대로서 광성보 본진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주변을 감제하기 좋은 곳이다. 광성돈대(1번)와 손돌돈대(2번) 사이에는 어재연 장군의 쌍총비와 당시 전사한 군인들을 기리는 신미순의총이 있다. 또, 저 길은 특이하게도 나무들이 뿌리가 드러난 채 자라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 저 곳이 과거에는 성벽이 아니었을까 싶다(나중에 언급하겠다). 3번은 강화 해협으로 불쑥 튀어나온 용두돈대로 규모는 작지만, 강화해협을 지나는 모든 배에 직접 위협을 가하며 감시할 수 있는 곳이다. 단, 화포가 충분하고, 위력과 사거리가 충분할 때 얘기지만. 4번은 신미양요 이후 추가된 것이라고 하는데, 광성포대다. 따로 성벽을 만들지는 않고 포좌만 만들었다. 나름대로 신미양요의 전훈을 분석하여 방어력을 강화한 조치로 보여지지만, 무기 성능이 뒤떨어지는 문제때문에 과연 실전에서 도움이 되었을 지는 모르겠다(신미양요 이후 광성보에서 전투는 없었다).

보다보니 부여의 백제 산성 배치가 생각난다. 부소산성을 중심으로 주변에 산성들을 구축하여 유사시 적군을 분산시키거나 특정 성에 적군이 몰리면, 다른 성이 망치가 되어 모루가 된 성을 구원하는 방식이었던 백제 산성들의 배치를 연상시킨다.


[그림01] 부여의 백제계 산성들의 위치


나만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뭏튼 내가 보기엔 무척 비슷하다. 단지 광성보의 규모가 부여 일대 백제 산성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을 뿐이다. 이런 배치는 풍납토성과 다른 성(아차산성, 남한산성, 몽촌토성 등)들의 관계와도 비슷한데, 백제 산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광성보 역시 규모가 크게 작아졌을 뿐, 배치는 비슷하다. 백제와 조선을 연결하는 성곽 시설의 저런 배치가 우리나라 고유의 군사 전략의 일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신라, 고구려, 고려, 조선의 성의 배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 확인해봐야 겠는데, 누가 연구해놓은 자료가 있으면 좋겠다.

아뭏튼 각설하고. 광성돈대로 들어서자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것은 원형으로 축조된 성벽과 중앙에 전시된 3문의 대포였다.

NIKON D90 | 2009:05:05 15:11:28

[사진03] 광성돈대의 전체 모습. 묘하게 서양 중세 시대 방패 모양을 띄고 있다.


재밌는 건 성 전체는 원형인데, 중앙부는 방패모양이다. 원래 저런 모습이었는지, 복원 과정에서 저렇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강화도 일대의 성곽들도 한반도의 다른 성들처럼 일제 강점기 동안에 많이 파괴되었다. 물론 사후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자연 상태로 붕괴된 경우도 있지만 일제가 일부러 파괴한 것도 무시 못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수백개에 달하는 산성들 대부분은 나무와 풀 사이에 버려지고 무너진 모습으로 남아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복원 사업을 벌여오고 있기는 하지만, 예산과 자료 부족이나 사업의 적절성때문에 지지부진하다. 사실 수백개나 되는 크고 작은 성들 모두를 원형 그대로 복원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NIKON D90 | 2009:05:05 15:08:56

[사진04] 광성돈대 안에 전시된 당시 조선군의 주요 화포. 오른쪽이 대포, 가운데가 소포, 왼쪽이 불랑기다.


NIKON D90 | 2009:05:05 15:09:31

[사진05] 대포의 포구. 포구장전식에 포탄은 그냥 쇳덩어리다. 터져서 파편을 흩뿌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쇠로 만든 공이 날라가서 부딪히는 힘에만 의존한 무기다. 물론 서양도 19세기 초까지는 그랬지만.


NIKON D90 | 2009:05:05 15:09:42

[사진06] 소포의 모습. 대포보다 훨씬 작다. 설명에는 "가장 발전된 형태였다"고 되어 있었지만.


NIKON D90 | 2009:05:05 15:10:25

[사진07] 광성돈대의 총안구. 이곳으로 포를 들이밀었다. 크기로 봐서 소포를 썼음직하다.


광성돈대에서 보니 강화 해협이 한눈에 들어온다. 물론 나중에 가는 손돌돈대나 용두돈대에서는 더 잘 보였다. 신미양요 당시 미군이 광성보를 괜히 공격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광성돈대를 나와 용두돈대로 길을 잡았다. 그런데 길이 묘하다. 전에 부소산성과 성흥산선을 갔을때 무너져내린 토성벽 옆을 걷는 느낌이었다.

NIKON D90 | 2009:05:05 15:14:17

[사진08] 손돌돈대와 용두돈대로 가는 길.


손돌돈대와 용두돈대로 가는 길이다. 길 입구에 "산책로"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왼쪽에 나무가 자라는 부분은 과거에 성벽이 있던 자리가 아닌가 싶다. 비슷한 모습을 부소산성성흥산성에서 봤었다. 사진에는 운좋게 안찍혔지만, 내가 간 날이 어린이날이어서 가족 단위로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놀이공원도 좋겠지만, 이런 곳도 좋겠다. 왼쪽 흙언덕에는 뿌리를 드러낸 채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반대쪽은 경사가 급하다. 언뜻 보기에도 부소산성이나 성흥산성처럼 흙으로 쌓았던 성벽이 남은 게 아닐까 싶었다.

NIKON D90 | 2009:05:05 15:13:43

[사진09] 뿌리를 드러낸 채 자라는 나무들. 어쩌다 저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안내판에는 흙을 덮으면 오히려 나무 생장에 장애가 될 수 있어서 그냥 놔두었다고 한다.


NIKON D90 | 2009:05:05 15:19:16

[사진10] 신미순의총


NIKON D90 | 2009:05:05 15:19:59

[사진11] 쌍충비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면 신미순의총과 쌍충비가 있다. 신미양요 당시 광성보 전투에서 전사한 어재연 장군과 부하들을 기리기 위한 비석들이다. 쌍충비는 문을 열쇠로 잠가놓아서 격자 창문으로 들여다볼 수 밖에 없었다. 지금도 어재연 장군의 후손들이 매년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을 찾은 아이들은 그냥 마냥 신기한 물건 정도로만 보이는 것 같다. 같이 온 부모들이 설명을 해주지만 무슨 뜻인지 잘 모르는 듯. 하긴 너무 많은 걸 바랄 순 없겠지. 이곳을 지나면 이제 손돌돈대와 용두돈대가 나온다.

[사진12] 손돌돈대NIKON D90 | 2009:05:05 15:24:22

[사진13] 손돌돈대


손돌돈대는 형태는 광성돈대와 별 차이가 없지만, 광성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그래봐야 해발 몇 십m 수준이지만, 그래도 주변은 훤히 잘 보인다. 마치 성 안에 작은 내성을 몇 개씩 지형을 이용하여 거점을 쌓은 것처럼 만들어진 것이다. 아래쪽으로는 용두돈대가 있다. 나무만 없으면 훨씬 잘 보이겠지만, 그렇다고 나무를 잘라낼 수는 없고. 주변 곳곳에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그늘에 모여 앉아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내 나눠 먹고 있었다. 나야 뭐 혼자 온데다가 먹거리라고는 담배 몇 개피 뿐.(응?)

참고로, 손돌돈대의 '손돌"은 사람이다. 손돌은 원래 뱃사공이었는데, 강화도로 피난오게 된 왕이 물살이 빠른 곳으로 손돌이 배를 몰자 그를 의심하여 처형했다. 그러나 손돌은 죽기 전 바가지를 띄워서 그 바가지 가는 곳(바가지 맞나..?)으로 배를 몰고 가라고 말했다. 결국 배는 손돌이 몰았던 뱃길로 해서 안전하게 강화도로 넘어갔지만, 이후 물길과 바람이 거세져서 도저히 배로 건너올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그제서야 왕은 자신이 괜한 의심을 했다며 후회했다고 하는데, 정사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 광성보가 있는 곳이 "손돌목"이 된 것은 그때문이라고 한다. 지금도 음력 10월 30일이 되면 뱃사공 손돌이 배를 몰았던 곳에서 바람이 거세진다고 하니 자연현상에 애기를 끼워 맞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뭏튼 그런 연유로 이곳에 세워진 돈대에도 "손돌"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다.

[사진12] 성벽에서.NIKON D90 | 2009:05:05 15:26:25

[사진12] 성벽에서.

[사진13] 손돌돈대의 성벽과 산책로. 산책로를 잘 꾸며놓았다.NIKON D90 | 2009:05:05 15:27:57

[사진13] 손돌돈대의 성벽과 산책로. 산책로를 잘 꾸며놓았다.


NIKON D90 | 2009:05:05 15:37:12

[사진14] 용두돈대

NIKON D90 | 2009:05:05 15:39:02

[사진15] 용두돈대



용두돈대는 손돌돈대의 아래쪽에서 바다로 불쑥 튀어나와 있다. 이 지형때문에 광성보에서 최전방다. 적이 침입해오면 가장 먼저 포화 세례를 받을 곳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오히려 용두돈대의 규모는 무척 작다. 거의 초소 수준이다. 20명 정도 병사가 배치되면 소포와 전투 장비 때문에 꽉 찰 것 같다. 그때문인지 용두돈대의 오른쪽 해안가에 별도의 포대를 신미양요 이후에 설치했다. GOP 전방 초소 수준이라고 해야 할려나.

NIKON D90 | 2009:05:05 15:40:40

[사진16] 용두돈대에서 바라본 강화해협. 인천 방향이다.


NIKON D90 | 2009:05:05 15:32:06

[사진17] 광성포대 뒷모습

NIKON D90 | 2009:05:05 15:43:53

[사진18] 광성포대 앞모습



광성포대는 용두돈대 옆 해안가에 구축된 포대다. 돌로 성벽을 지은 것도 아니고, 오늘날의 벙커처럼 만들어놓았다. 9포좌, 5포좌, 3포좌 등 3개소가 구축되었다는데 사진에 찍힌 포대는 9포좌같다. 걸어서 그 옆까지 갈 수 있도록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지만, 가보지는 않았다. 신미양요의 전훈을 분석하여 방어력 강화를 위해 설치했다고 하는데 임진왜란 이후 크게 발전하지 못한 구식 화포로 눈부실 정도로 발전하고 있던 서양(그리고 서양 신기술을 받아들인 일본군)에 포대를 설치한다고 해서 충분한 국방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지 의심스럽다. 그리고 그 문제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NIKON D90 | 2009:05:05 15:44:02

[사진19 용두돈대 전경. 그래 이게 용두돈대의 전체다 -_-;; 그야말로 감시초소 수준이다.


용두돈대를 마지막으로 광성보를 나왔다. 이제 또 달릴 시간. 다음 목표지로 초지진과 덕진진을 잡았다. 옛날에 가본 적은 있지만, 그때는 필름 자동 카메라여서 그때 찍은 현상도 못한 필름을 다 잃어버린 지라 그곳을 들러서 강화초지대교로 건너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일이 꼬였다. 광성보에서 나와 덕진진으로 가던 중에 앞쪽 차들이 우회전을 하길래 별 생각없이 나도 우회전을 했더니만, 강화도 중앙부를 지나 아예 서쪽으로 쭉 가게 되버린 것. 이왕 그렇게 된 거 초지진과 덕진진을 버리고(?), 표지판에 보인 "강화갯벌센터를 새로운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그곳도 그냥 지나쳐 버렸다. 강화갯벌센터 1.7Km란 표지판까지는 봤는데, 그 다음에 표지판이 안보이더니 어느 틈엔가 내가 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화살표가 그려져 있고, "강화갯벌센터 14km"같은 표지판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대신에 "동막 해수욕장"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강화갯벌센터를 휭하니 지나친 것. 아놔. 내비게이션을 일부러 장착하지 않고 내가 "종이GPS"라 부르는 지도책에 의존하다보니 발생한 사고 아닌 사고다(내비게이션을 일부러 장착하지 않은 것은 길을 외우고, 지도 보고 찾아가는 연습이라는 두 가지 목적때문이다}. 그냥 동막으로 달렸다. 강화갯벌센터는 나중에 다시 가면 되지. 어차피 무계획 드라이브였으니 말이다.

중간에 석모도 가는 선착장에 잠시 들렀지만, 이미 16시 30분이 넘은 지라 석모도에 들어가는 것도 단념했다. 지금 들어가면 못나온다. 그렇게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동막으로 가던 중 도로 한복판에 고양이 한 마리가 죽은 채 버려져 있었다. 깜짝 놀라긴 했지만, 다른 차들과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이 고양이 사체를 밟고 지나가야 했다. 갓길도 없는 1차선 지방도라 피할 방법이 없었다. 아마 그 고양이는 도로를 지나가려다가 차에 치였을 것이다. 지금도 사체가 방치되어 있을까.

그렇게 고양이를 밟고 지나간 동막 해수욕장에는 의외로 사람이 많았다. 그 날 강화도를 돌다가 느낀 건데 펜션이 무척 많다. 10년전에 왔을때는 별 기억이 없지만, 잠시라도 펜션이 나타나지 않으면 강화도민들 좀이 쑤시기라도 하는 건지 거의 몇 백m마다 하나씩은 있는 것 같다. 1박 2일로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MT가면 딱이겠다. 청평, 대성리, 강촌에서 좀 벗어나는 것도 좋을 듯. 동막 해수욕장 앞은 팬션의 절정이다. 마을 하나가 통째로 펜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는 산중턱에 자리잡아 전망이 최고 좋다고 홍보하는 펜션도 있었다. 다음에 MT갈 일이 있으면 강화도도 적극 추천해봐야겠다.

동막 해수욕장을 찾았을때는 썰물때였다. 서해안이 그렇듯, 여기도 엄청난 갯벌이 펼쳐졌다. 바다가 어디서 시작하는 건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NIKON D90 | 2009:05:05 16:50:19

[사진20] 동막 해수욕장. 갯벌 뿐이 안보인다.


의외로 사람들이 갯벌에 들어가 놀고 있었다. 아직 수온때문에 해수욕은 할 수 없긴 하지만, 어차피 바다는 보이지도 않는다. 도대체 바다는 어디 있는 거야?

NIKON D90 | 2009:05:05 16:51:25

[사진21] 갯벌과 하나되다.

NIKON D90 | 2009:05:05 16:54:24

[사진22] 유유자적 갈매기

NIKON D90 | 2009:05:05 16:55:00

[사진23] 갈매기떼


NIKON D90 | 2009:05:05 16:55:35

[사진24] 자연 속으로. 갯벌 속으로.


NIKON D90 | 2009:05:05 16:56:21

[사진25] 새들과 함께.


NIKON D90 | 2009:05:05 16:57:04

[사진26] 누구나 한번쯤 해봤음직한 물길 만들기 놀이. 밀물되면 싹 사라지는 물길이지만, 나름 재미있다. 그러니, 대운하 삽질을 그렇게 하고 싶으면, 가족들이랑 바닷가에 놀러가서 한반도 지형 만들어놓고 놀아라 좀.


NIKON D90 | 2009:05:05 16:57:49

[사진27] 놀다 지쳐 갯벌에서 나오는 사람들 위로 유유자적 날고 있는 갈매기.


NIKON D90 | 2009:05:05 17:00:20

[사진28] 강화도가 최전방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해주는 경고문.


NIKON D90 | 2009:05:05 17:01:43

[사진29] 해안 노송 숲에는 텐트 세워두고 노는 사람들도 있었다. 6일 날 출근이니 여기서 잠을 자는 건 아니겠지.


NIKON D90 | 2009:05:05 17:06:46

[사진30] 갯벌에서 허우적


동막해수욕장에서 나와 괜히 또 인천을 향했다. 83년인가 84년에 우리나라 수해에 북한이 구호용품을 보냈을때 그 화물선 보러 아버지와 함께 자유공원을 찾은 적이 있다.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역시 내비게이션 없이 인천광역시를 돌았다. 힘들긴 힘들더만. 같은 곳을 몇 번 뱅뱅 돌기도 하고. 대충 어림짐작으로 방향을 잡아 달렸다.

내비게이션없이 달리다보니 요령 아닌 요령이 생겼는데,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목적지를 잡으면 내가 지금 있는 위치를 함께 지도에서 확인한 다음 중간 이정표가 되는 지명들을 대충 외운다. 그리고 출발하고 출발한 이후에는 도로안내판만 보고 달리는 거다. 아직까지는 괜찮게 먹혀 들고 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인천 월미도. 문화의 거리라고 되어 있지만, "문화의 거리"보다는 "유흥과 놀이의 거리"가 더 적합할 것 같다. 지금 월미도엔 인천광역시가 거액을 들여 공사 중인 모노레일이 한창 공사 중이다. 월미도 입구에서 시작해서 월미도 전체를 한바퀴 도는 모노레일이다. 놀이공원에서나 놀이 기구로나 이용했던 모노레일이 이제 수송 수단으로 탈바꿈할 준비 중인 셈이다.

NIKON D90 | 2009:05:05 19:52:18

[사진31] 모노레일 공사 중인 인천 월미도.

NIKON D90 | 2009:05:05 19:52:51

[사진32] 저기가 어딜까. 월미도에서 바라보이는 곳.


NIKON D90 | 2009:05:05 19:55:16

[사진33] 다정스레 나란히 벤치에 앉은 젊은 연인들. 솔직히 부럽다.-0-;;;;


월미도 들어갈때 우연히 차이나타운을 발견했다. 사실 차이나타운은 관심이 없었는데, 지나가다 슬쩍 보니 온통 빨간 조명이 눈부실 정도여서 호기심이 생겼다. 역시 무계획에 1인 여행은 이런게 좋다. 차이나타운 공영주차장에 차를 일단 세웠다. 공영주차장도 외관은 중국풍이다. 9시 이후까지 있을 것이면 미리 선불로 받는다고 해서 얼마냐고 물으니 "600원입니다." ........... 웬 600원. 서울에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요금이다 ;;;; 가볍게 지불하고 차를 세운 다음 나왔다.

NIKON D90 | 2009:05:05 20:34:17

[사진34] 차이나타운 근처의 골목.


NIKON D90 | 2009:05:05 20:35:42

[사진35] 중국풍의 가게


NIKON D90 | 2009:05:05 20:35:59

[사진36] 대형 중국 요리점들. 오른쪽 2번째 건물이 한중 합작 요리인 자장면의 원조 공화춘이다.


NIKON D90 | 2009:05:05 20:36:43

[사진37] 특별히 공화춘만 한 컷. 들어가보진 않았다.


NIKON D90 | 2009:05:05 20:48:08

[사진38] 차이나타운 근처 골목 주택

NIKON D90 | 2009:05:05 20:50:18

[사진39] 차이나타운 근처 골목 주택


글쎄 다음엔 또 어딜 무계획으로 달려볼까. 오늘도 그냥 한 번 달릴 수는 있는데 말이다.


Trackback 0 : Comment 0

Write a comment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