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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여 여행기 첫째날


대한민국 2008.03.16 22:51

부여를 처음 갔던 것은 1993년이었다. '93년 답사의 2번째 날이었다. 그러나 기억나는 것은 전날 마신 술로 인해 비몽사몽간에 부소산성을 올랐던 것 정도다. 낙화암에서 93학번 후배가 농담을 했던 것도 기억이 나는데, 그 후배는 낙화암에서 3천 궁녀가 떨어질때 나당연합군의 장수가 건너편에서 점수판을 들지 않았을까 라고 농담했다. 그게 농담의 대상이 되겠냐고 할 지도 모르지만, 패자와 승자의 차이를 여실히 느끼게 해주는 농담이라는 생각도 든다.

부소산성에서 바라본 부여읍

부소산성에서 바라본 부여읍


아뭏튼, 14년만에 다시 부여를 찾기로 결심하고 대강 준비하고 출발했다. 혼자 가는 여행의 경험이 거의 없어서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잘 몰랐는데, 대충 부여에서 가볼 곳을 지도로 확인하고, 서울에서 내려가는 교통편, 그리고 대강의 숙소를 확인하는 정도로만 했다. 준비물은 사진기, 저녁때 숙소에서 대충 입고 잘 추리닝복과 티셔츠, 다음 날 갈아입을 양말 한 켤레 정도. 하지만 역시 여행 초보자답게 이것저것 어긋나버렸다.

혼자 가는 여행에서 추리닝복과 티셔츠는 쓸데없이 준비한 것이 되버렸고, 뭔가 기록하고자 가져간 시스템 다이어리도 거의 쓰지 않았다. 1박 2일 정도의 짧은 여행에는 간단한 수첩만 준비해도 되겠다. 저녁에 모텔에서 기록해놓는 것도 모텔에서 나오는 케이블 TV보다가 그냥 넘어가버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절정에 달한 것은 출발한 시간. 점심때 약속이 있어서 2시쯤에 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한 것이 첫 날을 엉망으로 만들어저렸다. 도착하니 오후 4시였고, 게다가 겨울이라 금방 해가 저버리니 도착 후에 별로 둘러볼 시간을 갖지 못했다. 차라리 토요일 아침에 갔어야 했다. 다음에 여행갈때는 아침 일찍 출발해야겠다.

부여군의 관광은 부여문화관광 웹사이트에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다. 관광지도를 비롯하여 숙박, 교통, 그리고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추천하는 여행코스도 있으니 부여를 가기 전에 이 사이트에서 먼저 둘러보는 것도 좋다. 관광지도도 제공하는데 부여읍 현지의 관광 안내소에서 제공받는 지도와 같은 것이다. 도착 후에 다른 게 있거나 안내 책자를 기대하고 관광안내소를 찾았는데, 같은 지도를 주길래 약간 당황했다.

아뭏튼 점심 약속을 마무리하고, 남부터미널로 향해 곧바로 버스에 올랐다. 부여로 가는 버스는 두 가지가 있는데, 남부터미널에서는 "부여고속"과 "부여"로 표현하고, 부여 현지에서는 "직통"과 "완행"으로 표기하고 있다. 부여고속(직통)은 서울과 부여만 오가는 버스로 2시간이 소요되고, "부여"(완행)은 중간에 여기저기 들르는지 3시간이 걸린다. 기차는 논산이나 공주에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야 하니 그냥 고속을 이용하는 것이 낫다. 고속은 12,200원이다.


오후 4시, 부여읍에 도착했다. 원래 계획은 첫째날에는 부여박물관, 정림사지, 궁남지를 훑어보는 것이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나왔다. 나오자마자 맞이하는 것은 원더걸스의 텔미. 오른쪽의 사진이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나와 처음으로 찍은 것이다. 남쪽 궁남지를 향해 찍은 것이고, 사진에서는 도로표지판에 가려 안보이지만 계백 장군의 동상이 서있다. 바로 건너편에는 시장이 있다.

부여읍은 무척 평평했고 그리고 작았다. 이틀 동안 동서남북으로 걸어서 다니다보니 부여읍내의 절반은 외운 것 같다. 서울의 교통체증에 익숙해서 그런 지 평일도 차가 밀리지 않는 모습이 신기했다. 서울에서는 일요일이나 명절때, 저녁 늦게나 새벽때 아니면 보기 힘든 모습이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여유가 있고 편안해보였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속사정은 내가 모르니 염장지르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늘 북적거리기는 서울이 살기 좋은 동네는 결코 아닌 것은 맞는 것 같다. 부여의 시외버스터미널 바로 건너편에 시장이 있는데, 거기도 사람이 많이 안보였다. 유흥업소들과 시장이 밀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이 안보여 부여의 경제 사정이 안좋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본 시장의 모습은 저녁 6시 이전이었다는 거.

부여읍 재래시장 입구


이곳이 시장 입구 중 하나다. 정면의 골목을 쭉 지나게 되면 부여읍 시외고속버스터미널로 가게 된다.


오른쪽 사진의 동상이 부여군청 앞에 세워져 있는 계백 장군 동상이다. 저녁때 궁남지에서 부소산성쪽으로 가면서 찍은 것이다. 아뭏튼 시외버스터미널을 나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부소산성 정문에 위치한 관광안내소였다. 일단 이곳에서 지도나 안내책자를 얻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도는 웹사이트에서 출력한 것과 같은 것이어서 시간만 낭비한 꼴이 되버렸다. 그래도 인쇄 품질은 훨씬 선명하고 크기도 커서 챙겨들고 관광안내소를 나와 정림사지로 출발했다. 버스터미널에서 관광안내소로, 그리고 다시 정림사지로 가는 길은 계속 걸었다. 둘째날에 남쪽의 성흥산성을 다녀올때를 제외하고는 부여읍내를 계속 걸어다녔다.

그러나 백제의 마지막 수도 였다는 특성을 살리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백제사의 유명한 인물들의 동상도 서있지만, 도로명 자체를 백제와 관련된 이름들로 채운 것이다. 계백로, 성왕로 같은 것들이다. 농업과 관광산업 외에 딱히 개발할 수 있는 산업이 없어보이는 부여군 입장에서는 도로명에서부터 백제를 내세우려는 것 같다. 왼쪽 사진에 "성왕로"라는 도로 명 간판이 보일 것이다. 이 도로는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나와 부소산성으로 가는 길이다.

관광안내소에서 정림사지는 멀지 않다. 도로를 건넌 후에 10여분 뒤에 도착했다. 그러나 빙 돌아 정문을 찾아가보니, 동절기 관람 시간은 오후 5시까지다. 핸드폰 시계를 들여다보니 4시 43분. 그제서야 내가 너무 늦게 서울을 출발했구나 하는 실감했다. 박물관은 어차피 실내인데, 동절기라고 해서 5시까지만 운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어쨌든 그러려니 하고 궁남지로 향했다. 슬슬 어두워지고 있기도 하여 걸음을 서둘렀다. 정림사지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대로 궁남지마저 놓쳐 첫날 일정을 다 버릴 수는 없었다.

도착한 궁남지는 예상을 깨고, 담벼락도 없이 사방이 개방된 공원이었다. 북쪽 정림사지에서 계속 직진하면 궁남지에 도착하는데 공영 주차장이 있고 전체가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다. 산책로 주변으로 원두막이나 정자, 벤치가 있다. 그리고 주변 늪지에는 모두 죽은 연꽃이 있었다. 봄에 가면 절경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로의 모습이다. 긴 의자와 정자가 너무 없지도, 너무 많지도 않게 적당히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겨울에 와보니 정말 쓸쓸하기 그지 없는 광경이다. 나무와 몇 마리 새 말고는 모두 죽은 것처럼 보였으니. 늦봄이나 초여름에 오면 정말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곳을 산책로로 조성한 부여군의 센스도 멋졌다. 기록에 나오는 궁남지가 이곳이 맞다면, 그때 왕족을 위한 놀이터였던 이곳이 이제는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산책로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연꽃 조성도다. 그러나 내가 갔을때, 겨울이라 죽은 꽃 말고는 보질 못했지만, 봄이나 여름에는 아름다울 것 같다. 궁남지는 서동요 이야기에 서동의 어머니가 서동을 낳았다고 하는 얘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원래 자연습지였다가 현재와 같은 인공연못으로 발굴/복원한 것은 1965년 ~ 1967년의 일이다. 원래 늪지였을때는 "마래방죽"이라는 이름이었다고 하나 이곳을 삼국사기에 나오는 궁남지로 추정하는 듯 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 제5 무왕 35년조에 穿池於宮南 引水二十里西岸植以楊柳水中築島嶼 擬方丈仙山(천지어궁남 인수이십리서안식이양유 수중축도서 의방장선산)이라고 되어 있다. "궁의 남쪽에 연못을 파고 20리 밖에서 물을 끌어들여 연못가에는 버드나무를 심었다. 연못 가운데에는 섬을 만들어 방장선산을 모방하였다"는 뜻이다.

궁남지 주변


궁남지 주변의 버드나무다. 그러나 이 나무들의 굵기를 봐선 복원 공사때 삼국사기 기록에 따라 심은 것 같다. 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1990년 ~ 1993년,1997년에 걸쳐 조사했는데 수로와 관련된 유적 및 백제 시대 유물로 추정되는 물건들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백제는 왕궁에 연못을 만드는 전통이 있다고 하는데, 웅진(공주)의 공산성 내의 왕궁지에서도 이와 비슷한 연못이 발견되었다. 그러고보니 신라도 금성에 안압지라는 큰 연못을 만들었고, 경복궁에도 근정전 근처에 제법 큰 연못이 있는데, 한국식 정원에 크고 작은 연못이 있는 것도 이 전통이 아닌가 싶다.

거대한 인공연못의 한 가운데에 만들어진 섬에 세워진 정자

거대한 인공연못의 한 가운데에 만들어진 섬에 세워진 정자


이 연못에는 이렇게 수도로 계속 물을 공급하고 있었다

이 연못에는 이렇게 수도로 계속 물을 공급하고 있었다


정자로 들어가는 나무 다리


아마 장식용으로 갖다둔 것 같은 돛단배다

아마 장식용으로 갖다둔 것 같은 돛단배다


한 30여분쯤 궁남지를 돌았다. 돌아볼수록 겨울에 온 걸 후회했다. 봄에 궁남지때문에라도 다시 와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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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연꽃밭(?)의 모습이다. 보다시피 지금은 엉망이다. 첫날은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20분쯤 걷자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고, 부소산성 정문에서 숙소를 찾았다. 오후 2시에 출발하는 바람에 고작 궁남지 하나만 둘러본 첫 날이었다. 너무 성급했던 모양이다. 부소산성 정문쪽의 모텔 침대에서 다음 날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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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21 19:08 신고 Modify/Delete Reply

    멋져요~ 혼자여행이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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