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추모글 남기기



■ [등산] 남한산성 관통 10Km 산악행군기 - 첫번째


등산 2008.11.14 00:12

한 마디로 미친 짓했다. 지난 11월 2일에 남한산성을 찾았다. 원래 계획과 전혀 다르게, 거의 10km 산악행군을 해버렸다. 꼬마도 1시간 만에 올라가는 인왕산을 2시간 30분 걸려 올라갔던 내가 말이다. 미쳤지. 원래 그런 일정은 아니었는데, 애초 북문을 넘어 하남시로 내려가보자고 생각했던 것이 이상하게 꼬여버렸다. 그날 대충 오갔던 경로를 아래 지도에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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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1] 전체 행군로(?)


새벽 6시, 분당선을 타고 내려가 복정에서 갈아탄 다음 남한산성입구역에서 내렸다. "남한산성 입구역"이라지만 서울대입구역처럼 전혀 입구와 가깝지 않다. 이게 뭐가 "입구"인지 모르겠다. 20분 정도 걸어가야 했으니 말이다. 아뭏튼 남한산성유원지 입구의 등산로에서 시작하여 남문으로 올라갔고, 거기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검단산을 가보고 분당으로 내려가 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남문에서 성벽을 따라 내려가던 중, 길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하나는 시멘트가 깔린 도로고, 하나는 산길이었다. 이정표가 없어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던 차에 등산객 한 명이 보여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분이 진짜 검단산은 하남시에 있는 것이라고 한다. 검단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가까운 거리에 2개인 것이다. 하남시의 검단산은 이 지도에 나와 있지않다. 하남시의 검단산은 한강변에 있으며 팔당댐과 연결된다. 하남시로 가려면 벌봉을 넘어야 한다고 했고, 그럴려면 성벽을 따라 동문으로 계속 내려간 다음, 거기서부터 길은 동문에 있는 막걸리 파는 집에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방향을 다시 돌려 성벽을 따라 동문으로 내려갔고, 벌봉을 들른 다음 거기서 하남시로 내려갔다. 하남시로 가는 등산로는 길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수준이다. 자칫 길 잘못 들기 딱 좋은 상태다. 그런 길에서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난 걷는 것도 힘든데. 길도 제대로 표시가 안된 곳에서 산악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존경스러워보였다. 그리고 저런 급경사에 무거운 돌로 성벽을 쌓은 옛 사람들도 존경스러워졌다. 그렇게 우여곡절끝에 하남시 상사창동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마을이 보이자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는데, 마을에 내려서서 당황스러웠다. 시내버스의 흔적이 전혀 안보이는 것이다. 버스정류장까지 1시간을 걷는 동안 시내버스가 지나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쪽으로 내려온 것이 후회막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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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2] 남한산성 내에서 이동경로.


남한산성 내에서는 위의 경로로 이동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분당쪽 검단산으로 가려다가 방향을 틀어 남쪽 성벽을 따라 걸었다. 나중에 나오겠지만, 제3옹성부터 동문까지는 전혀 정비가 되어 있지 않다. 아직 정비 공사 중이다. 길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성벽들은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다. 길은 또 얼마나 급경사이던지 등산화를 신고 갔지만, 아침 이슬까지 머금은 돌덩어리들이 자꾸 나를 미끄러뜨렸다. 북문부터 남문까지 구간은 정비가 너무 잘되어 있어서 등산로가 아니라 산책로가 되버렸지만, 이쪽은 야생 그대로다. 다만 지금 한창 정비/복원공사 중이니 내년 말쯤에는 정비된 길을 따라 탐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아뭏튼 위태위태한 길을 따라 동문으로 내려간 다음 산성리 남한산성 역사관에서 벌봉을 향해 올라갔고 북쪽 성벽을 따라 벌봉을 목표지점을 삼아 걸었다. 그런데 벌봉으로 가려던 중 동대사지에서 엉뚱하게 장경사지옹성으로 내려가버렸고, 그냥 내려갈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오기가 발동하여 다시 동대사지로 올라가 벌봉으로 향했다. 벌봉이나 장경사지 옹성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언급할 것이다. 벌봉부터는 앞서 언급한 대로다.

거리를 직접 측정해보지는 않았지만, 아침 7시에 남한산성입구역에 도착했고, 7시 20분에 등산을 시작해서 상사창동에 내려온 시간은 오후 1시였다. 대부분 산길로 해서 6시간을 행군(?)했고, 상사창동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1시간을 걸어갔으니 7시간을 헤멘 셈이다. 이 얘기를 이 블로그에 자주 등장하는 그 선배(사진명 "노인과 바다")에게 했더니 다시 같이 가보잔다. -_-;;; 미치겠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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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아침 7시 20분, 남한산성공원의 모습. 아직까지는 북적거리지 않고 조용하다. 약수물 뜨러온 사람들과 등산객들이 좀 있을 뿐이었다. 남한산성입구역에서 20분 가까이 걸어온 다음 잠시 물마시며 쉬었던 곳이다. 이제 여기서 등산을 시작하면 남문으로 바로 올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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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등산로 초입. 이른 시각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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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등산로 초입에 있던 돌탑공원. 누가 세웠는지 몰라도 참 많다. 올라가는 길에도 이곳말고도 돌탑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심지어 남북통일을 기원한다는 돌탑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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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생태공원. 그런데 산 자체가 생태공원아닌가. 별로 가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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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올라가던 중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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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 어느 틈에 나타난 도로.



등산을 시작한 지 40여분만에 왼편으로 도로가 들어왔다. 저 도로는 과거 남문 매표소로 연결된 도로다. 지금 남한산성은 입장료를 받지 않지만, 남문 매표소 건물은 그대로 있다. 저 도로는 물론 지금도 사용되고 있고, 산성리로 간다. 남문으로 곧장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남문 옆에 따로 터널이 나 있다. 아뭏튼 여기까지는 좋았다. 이제 첫번째 목표지점까지는 다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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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 남문 바로 앞의 돌벽.


사진에 보이는 돌벽을 지나면 남문이다. 이 돌벽은 성벽의 일부가 아니다. 남문 앞은 넓지 않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아마 이즈음부터 경사가 급해서 성문 앞에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축조한 것 같다. 건축/토목은 잘 모르지만, 일정한 공간을 확보해서 혹시나 모를 성문의 붕괴도 막고 말이다. 물론 저렇게 수직의 돌벽을 세워 적군의 성문 접근을 방해하는 역할도 했을 것 같다. 나중에 좀 자료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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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 남문인 지화문. 정조 3년에 개보수한 문이다. 그러니까 개보수한 지 254년된 문이다. 4대문 중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문이다. 지금은 광주시와 성남시의 경계를 표시하는 기능도 겸하고 있다. 그런데 성루에 올라가면 눈뜨고 봐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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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9] 지화문 좌우로 뻗은 남쪽 성벽의 일부. 돌 색깔을 봐선 이쪽 성벽은 아직 예전 그대로인 모양이다. 복원공사를 한 성벽은 돌 색깔 차이가 너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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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0] 웅장하게 보일 수 있을까 싶어서 밑에서 찍어봤다. 그런데 시도가 성공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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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1] 남한산성 안쪽에서 찍어본 지화문. 위에 올라가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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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2] 노란 은행잎과 녹색의 침엽수(소나무인지 전나무인지 모르겠다)가 어울린 성벽길. 바닥에는 낙엽이 잔뜩 깔려, 걸을때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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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3]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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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4]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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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5]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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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6]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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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7] 낙서



기분좋게 성루에 올랐는데 성루의 기왓장 마다 사람들이 칼로 낙서를 새겨놓았다. 지들 이름을 자랑스럽게 새겨놓았다. 지화문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조 3년에 개보수한 것이니 개보수한 시점인 1754년부터 따져서 254년 된 성문이다. 그런데, 위 사진 속 낙서들은 극히 일부다. 성루의 모든 기왓장에 저렇게 칼로 새겨놨다.

외국 사적지나 기념물 등에 한글로 된 낙서들이 즐비하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역시나 안에서 새는 박이 밖에서도 샌다. 평소에 얼마나 모자라고 별볼것없는 인간들이길래 저런 곳에 자기 이름 새겨 남들에게 알리고 싶었을까. 그런다고 누가 관심가져줄 것도 아니건만. 머리는 폼으로 달고 있는 게 틀림없다. 대체 뭐하는 놈들일까. 저기다 저렇게 칼로 새기면 누가 알아줄까. 하기사 저런 짓거리 해놓은 놈들, 자기가 뭔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희희낙낙거리며 저랬을 거고, 내려오는즉시로 까마귀 고기 구워먹었을 것이다. 아 정말 똥덩어리들.

지난 번에 국립박물관의 안내판에 애들이 볼펜으로 낙서한 걸 포스팅하기도 했었지만, 그것과는 비교도 안된다. 국립박물관 안내판에 초등학생들이 낙서해놓은 곳은 안내판에 불과한 것이지만,이건 254년 된 문화재란 말이다. 물론 저 기왓장들이 복원공사를 하면서 새로 얹어놓은 기왓장일수도 있지만, 성루가 문화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저런 낙서해놓은 것들의 집에 다른 사람들이 가서 칼로 낙서를 새겨놓으면 길길이 날뛰며 고소하니 어쩌니 변상하라는 둥 난리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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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8] 지화문에 연결된 여장. 여장은 성벽 위에 전투를 위해 쌓아놓은 돌담으로, 남한산성 여장은 원안 2개와 근안 1개로 구성되어 있다. 현대로 치면 참호용 방벽에 총안구 뚫어놓은 꼴이다. 이 여장은 상태로 봐서 정말 원래 여장 그대로인 것 같다.


지화문 성루에서 불쾌한 감정을 뒤로 하고, 성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목표지는 분당쪽 검단산이었다. 성벽을 따라난 길은 그냥 산책로 수준이었다. 성벽을 쌓느라 잘 닦여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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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9] 남한산성도 역시 산이라 숲이 울창하다. 어떤 곳은 어두울 정도. 공기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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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 이쪽은 그래도 난간도 설치되어 있어서 길이란 걸 알 수 있다. 사진 왼쪽은 제1옹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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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1] 제1옹성의 흔적.


옹성은, 원래 성벽에서 불쑥 튀어나온 작은 성이다. 옹성은 치와 다르다. 치는 본성에서 그냥 요철 모양으로 돌출한 성벽이지만, 옹성은 길게 내지는 반원형으로 본성에서부터 성벽을 따로 내어 이중으로 축조된 성이다. 말 보다는 그림이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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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치의 개념.


치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치는 본성 성벽에서 돌출하게 설치하여 성벽에 접근한 적군을 3면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옹성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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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옹성.


옹성은 본성 성벽에 붙은 작은 성이다. 전방 전초진지 역할이다. 옹성과 본성은 작은 암문으로 연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남한산성에는 암문이 16개가 있고, 옹성은 남옹성 3개, 연주대 옹성, 장경사지옹성 등 5개가 있다. 남한산성과 벌봉을 연결하는 봉암성과 한봉까지 연결된 한봉성도 있지만, 이곳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옹성으로 구분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치는 보이지 않는다. 일단 적이 쳐들어오면 옹성에서 1차로 저지할 수도 있고, 적의 움직임을 보다 잘 관찰하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다. 남한산성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남한산성의 옹성 중 연주봉옹성을 제외한 나머지 옹성들은 모두 병자호란 이후에 축조되었다고 쓰고 있다. 봉암성도 병자호란 이후에 축조되었는데 아마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남한산성의 방어 취약점에 대해 검토 작업을 했던 것 같다. 남쪽 성벽에는 옹성이 3개 있다. 이쪽이 가장 성벽이 평탄하여 방어에 취약했다고 한다. 병자호란 이후에 남쪽 성벽에만 옹성을 3개 쌓은 것에서 이곳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을 듯 하다.

사진21의 제1남옹성은 둘레 426m짜리이지만, 복원 공사가 안되어 처음에는 뭔지 못알아보았다. 얼핏 봐서는 그냥 작은 언덕처럼 보일 정도였다. 주의해서 보지 않으면 성벽도 못보고 넘어갈 정도로 황폐화되고 수풀이 우성하다. 유난히 제1남옹성이 상태가 안좋다.

제1남옹성에서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면 분당에 인접한 검단산으로 가게 된다. 내가 알고 있던 검단산은 하남시의 검단산이어서 헷갈렸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길이 두 갈래여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망설이다가 지나가던 등산객의 조언으로 다시 동문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남벽을 따라 조성된 등산로가 제3남옹성까지는 잘 정비되어 있어서 편하게 갈 수 있었다. 그때까진 좋았지. 산책하는 기분이었으니.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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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2] 단풍과 노란 은행나무잎으로 물들은 주변 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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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3] 남쪽 성벽의 일부. 색깔이 밝은부분은 최근에 복원 공사한 부분이다. 다른 돌들과 색깔 차이가 심해도 너무 심하지만, 폐허보다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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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4] 역시 남쪽 성벽의 일부. 이쪽은 거의 대부분이 새로 복원한 것이다. 여장까지 새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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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5] 성벽 붕괴 위험이 있다는 경고판이 붙은 성벽. 잘 보면 기저부의 성벽들이 튀어나온 것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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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6] 남한산성 성벽 단면


복원 공사 목적인지 성벽을 일부 절단해놓았다. 덕분에 성벽이 어떤 식으로 쌓여졌는지 단면을 볼 수 있었다. 제일 바깥쪽에 큰 돌을 쌓고, 안쪽에는 그보다 작은 돌들을 층층히 쌓고 있다. 안쪽의 흙은 산이니 그냥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일 거다. 축성 시에 항상 난제가 축성 재료를 확보하고 성벽이 무너지는 일이 없도록 기반 공사를 하는 것인데, 산성은 일단 후자 면에서는 유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벽이 무너지지 않도록 받쳐주는 안쪽의 흙더미가 산에서는 원래 탄탄하니 경사를 지어서 쌓여져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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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7] 제2남옹성. 형태가 잘 유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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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8] 제2남옹성 근처의 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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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9] 암문에서 바깥쪽으로 한 컷 찍어봤다.


암문은 작은 문이다. 남한산성에 모두 16개의 암문이 있는데 정식 성문이 아니라 적의 눈에 잘 안띄도록 만든 작은 문으로 정찰 등의 목적으로 바깥에 병력을 내보내거나 옹성 등을 연결하는 용도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눈에 너무 잘 띄더라. 비밀문도 아니고 대놓고 "여기 문이에요!" 라고 외치는 것처럼 만들어져 있다. 옹성과 본성을 오갈 수 있는 암문들은 그렇다 쳐도 그냥 본성 성벽에 대놓고 만들어놓은 암문들은 대체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보다 비밀스럽게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적군도 그냥 보고 알겠다. 다만 입구와 통로가 다들 낮고 좁아서 한 번에 1명 이상 지나가기 힘들게 되어 있기는 하다. 스타크래프트의 마린들마냥 한 줄로 줄줄이 지나갈 수 밖에 없다. 지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말이다. 지금 남한산성의 암문들은 모두 관광객과 등산객들에 개방되어 있어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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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0] 제2남옹성의 일부. 성돌을 보니 부러 규격을 맞춰 만든 돌이 아니라 근처에서 채석하여 쌓은 것 같다. 중간에 빈 틈들은 잔돌들로 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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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1] 제2남옹성의 한쪽에는 현대인들이 만들어놓은 다리가 있다. 그러니까 원래 없던 것으로 원래 이 지점은 낭떠러지인 것이다. 임시로 만든 다리같고 걸어갈때 삐거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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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2] 남쪽 성벽을 따라 난 산책로 분위기의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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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3] 성벽을 따라 자라고 있는 담쟁이 덩굴. 뿌리와 줄기가 틈을 만들지는 않나. 틈이 생겨 벌어지면 성벽이 붕괴될 수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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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4] 제3남옹성 근처의 암문.


제3남옹성부터는 복원/정비공사가 한창이다. 남쪽 성벽을 따라 난 등산로는 여기가 끝이었으며 이 암문을 통해 다시 남한산성 안으로 들어와 계속 동문을 향해 걸었다. 길은 여기서부터 험해지고 굉장히 가파라졌다. 이 지점부터 동대사지까지는 산세가 험하고 경사가 가파르다. 게다가 제3남옹성부터 동문까지 구간은 복원/정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아 위험하기도 하다. 내년 쯤이면 끝나 경사는 가파라서 힘들어도 위험하지는 않은 길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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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5] 폐허 상태의 여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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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6] 폐허 상태의 여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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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7] 폐허 상태의 여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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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8] 폐허 상태의 여장 4



제3남옹성부터 동문까지 성벽들 상태가 대충 이런 분위기다. 언제부터 이런 상태로 방치되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깨지고 무너지고 난리도 아니다. 보는 사람을 씁슬하게 만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지/보수란 것이 티는 결코 안나면서도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새삼 느끼게 된다. 로마인이야기 10권은 로마의 도로, 수로 등에 대한 얘기로 가득하지만, 그 책에도 도로/수로에 대한 유지/보수의 필요성을 로마인들이 얼마나 신경썼는지에 대해 자주 언급되고 있다. 최소한 구한말 이후 망가지기 시작했을 것 같은데 전쟁에서 적군의 공격으로 파괴를 겪은 적이 없는 남한산성이 (병자호란때도 청군은 포위하여 말라죽이는 전략을 사용했다) 관리를 안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까지 망가지는 것을 보니 말이다. 현대에 들어와 복원/정비 공사가 한창이니 어서 빨리 옛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NIKON D40 | 2008:11:02 09:17:45

[사진39] 여장의 단면. 비록 씁슬한 광경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해서 단면을 보게 된다. 성벽과 달리 여장은 벽돌담에 가까운 수준이다.



동문으로 내려가는 길은 무척 험하고, 바닥도 아침 이슬을 머금고 있어 미끄러운 돌밭이다. 등산화를 신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척 조심스럽게 성벽에 의지해서 내려가야 했다. 공사가 끝나면 위험하지는 않겠지만, 경사가 가파라서 힘든 길이 될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해보인다. 이런 곳에 돌로 성벽을 쌓은 조상들이 갑자기 위대해보이는 순간이었다.

...................................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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