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추모글 남기기



■ 푸른 바다와 섬, 그리고 이순신의 도시 통영 (4) - 한산도 제승당 실망하다.


대한민국 2008.10.28 04:45

모텔에서 따뜻한 물로 목욕도 했고, 새벽부터 꽤 먼 거리를 걸어서 다녀서 잠을 푹 잘거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잠을 제대로 못잤다. 그나마 작년에 부여갔을때보다는 좀 더 자긴 했지만 말이다. 결국 일어난 시각이 아침 7시 정도였던 것 같다.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이다! 서울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숙박비로 나가는 돈이 아까워서 이 글을 쓰기 며칠 전에 텐트와 침낭을 덜컥 사버렸다. 앞으로는 가급적 모텔 등에서 자지 않을 생각이다. 텐트에서 자고 근처 대중탕에서 목욕하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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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마을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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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텃밭. 텃밭 옆은 바로 지붕이다.


아뭏튼 그건 그렇고, 9월 5일 아침, 잠이 여전히 덜 깬 상태로 터벅터벅 걸어 수산과학원으로 향했다. 마을 골목길을 지나가며 시골마을 골목길을 지나 경사길을 올라가면 수산과학원이다. 어제처럼 맑고 따가운 햇빛이 비치는 시골길에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상에 젖어 몇 컷 찍었다. 좁은 골목길에 텃밭도 만들어놓고, 담벼락은 잘 모르는 식물들이 큰 잎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대도시에서 장식용으로 담쟁이 덩굴을 심어놓는 경우도 간혹 보이지만, 이곳 마을 담벼락에는 담쟁이 덩굴은 아니었다. 아침 시골길을 걸어본 건 1992년에 과 농활대 물품 지원(필자가 지원한 물품은 코펠과 담배였다;; 코펠은 모자라서 부탁받았던 것이고, 담배는 당시 마을에서 어른들에게 눈치보인다고 당시 가장 대중 담배인 88을 살 수 없어서 원래 농활에 불참했던 필자에게 부탁했던 것이다. 간 김에 하루 농활하고 돌아왔다)차 갔다가 아침에 걸어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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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역시나 조용한 항구. 이미 어선 대부분은 먼 바다로 나갔으려나. 파도 하나 없이 잔잔하고 이 날도 맑았다.


수산과학원에 올라가니 아직 문을 열기도 전이다. 자판기에서 커피도 한 잔 뽑고, 수산과학원 앞에 주차장을 겸한 광장 같은 곳에 주저앉아 담배를 피워물었다. 일단 수산과학원 전시관이 개방될때까지는 기다려야지 뭐. 기다리는 동안 수산과학원 앞 바다를 살폈다. 이곳도 전망이 좋다. 수산과학원 옆에서는 둥근 돔형 펜션 공사가 한창 마무리 중이었다. 공사 자재들이 여기저기 쌓여있고, 트럭 한 대도 오갔다. 연말까지는 완공되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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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수산과학원 전경. 전시관을 겸하고 있다. 최근에 지어진 건물답게 단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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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전날 달아공원에서 보았던 섬들이다. 수산과학원에서 찍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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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 아침이지만 여전히 연무로 뿌연 통영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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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7] 이쪽도 마찬가지다. 이리저리 설정을 바꿔가며 찍어도 그리 만족스러운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만족스럽지 않은데도 올리고보는 필자는 역시 아마추어다)


이리저리 카메라의 설정을 바꿔가며 셔터를 눌러봐도 제대로 사진이 건져지지 않는다. ISO도 바꿔보고, 셔터 속도도 여러가지로 해보고, 화이트밸런스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것 같아 그냥 놔두었다. 햇볕이 쨍쩅했으니 말이다. 이 사진을 보면 햇볕이 쨍쨍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날 날씨는 분명 아침부터 햇볕이 따가웠다. 하지만 사진은 이 모양이다. 필자 실력이 아직 영 일천한 탓이다. 사진 공부도 머리 아픈 일이다. 언제쯤 누가봐도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을련지. 흑흑.

몇 컷 찍고 커피 한 잔 들고 매점 그늘에 앉아 담배 하나 피고 있으려니 웬 사람이 말을 걸어온다. 여러번 언급된 그 사람이다. 여행객이라는 걸 알고는 통영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기 바쁘다. 듣기 싫지 않았다. 자신이 사는 고장에 대한 자부심이 배여 있는 사람이었다. 아침부터 멀리 서울서 찾아온 손님이라 생각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이곳저곳 주변 섬들에 대해 알려준다. 불행히도 메모도 안해놓은터라 찍은 사진들과 전혀 맞춰보지 못하겠다. 그 분한테 참 미안하다. 대충 기억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통영 앞바다는 겨울에 와서 찍어야 한다. 통영 홍보 사진이라고 알려진 것들은 모두 겨울에 찍은 것들이다. 여름에는 날씨가 맑아도 바다에 연무가 잔뜩 끼어서 좋은 사진은 거의 못건진다. 한려수도 케이블카도 마찬가지다.
매년 1월 1일이 되면 일출 보러 사람들이 수천명 수산과학원 앞에 온다. 특별히 무슨 행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 날이 되면 전 직원들이 나와 커피같은 걸 자원봉사한다. 맑은 날씨가 되면 가장 남쪽 끝에 있는 국도도 보인다.
이미 뭐 날이 다 밝은 뒤에 올라간 터라 일출은 못보았다. 하지만 그 직원 말대로라면 수산과학원 앞도 일출 명당자리인 모양이다. 그리고보니 지금까지 일출을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아차산이라도 다시 올라가봐야지(아차산 정상에는 일출 전망대라고 따로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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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 입구에 전시된 규화목. 나무가 돌덩어리로 변한 것들이다.


수산과학원 앞에 뜬금없이 전시된 규화목이 눈길을 잡았다. 규화목은 나무가 돌로 변한 것으로 화석의 한 종류다. 늪지대, 갯벌의 습한 진흙지대 또는 모래나 화산재의 날림에 의해 빠른 속도로 묻힌 후, 나무 속에 있던 광물성 바이러스들의 작용으로 돌로 변한다. 그 과정에서 나무의 나이테나 구조, 조직 등이 그대로 돌로 굳어진 것이다. 고식물들인지라 식물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런 걸 본 적은 처음이다. 규화목을 둘러보고 전시관으로 들어섰다. 전시관은 일반 수족관이 아니어서 통영 어업 현황, 과거 우리나라 배들의 변천사, 진주 양식, 통영 주변의 바다 생물들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통영 양식산업도 주요한 전시 소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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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9] 통영 지역의 전통배, 통구밍이. 전시관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관람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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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0] 수산과학원에서 찍은 달아공원 방향. 왼쪽 중턱 즈음이다.


2층이었나. 바다 환경 문제를 다룬 전시 코너가 있었다. 인간이 버린 쓰레기로 망신창이가 되버린 바다 생물들의 사진이었다. 가장 소름끼치게 한 것은 아래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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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1] 이것이 새의 뱃속이라니.


얼핏보면 새의 둥지같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래쪽에 달린 안내문에는 "새의 뱃속"이라고 되어 있다. 담배꽁초들이 많이 눈에 띈다. 이 사진이 제일 필자를 후벼팠던 건 어제 소매물도를 오가는 배안에서 담배를 피운 뒤 꽁초 몇 개를 바다에 던져서였다. 카메라 가방에 항상 휴대용 재떨이(편의점에서 파는 재질이 알루미늄으로 된 커피캔이다)를 가지고 다니지만, 몇 개인가는 바다에 그냥 휙 던저버렸던 것이다. 그 생각이 나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평소 가지고 다니는 재떨이에 안버리고 왜 바다에 버렸을까. 미안하기 그지없다.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겠다. 1시간 정도 관람을 마치고 마을로 내려와 통영시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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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2] 통영 앞바다 양식장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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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3] 통영 앞바다 양식장들 (2)


전복, 굴 등 자연산으로는 수요를 채울 수도 없고, 자연산 어족 고갈때문에 통영시가 꾸준히 투자하고 있는 양식장들 중 하나다. 위 사진의 양식장에서 어떤 놈들이 양식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통영 양식의 대표 상품으로 굴이 있다. 통영시는 양식으로 키운 굴로 굴통조림, 훈제굴 등등을 만들고 있고, 이렇게 가공된 굴은 외국에 전량 수출한다. 우리는 그냥 생굴을 초장에 찍어서 먹는 게 전부지만, 외국은 안그런 모양이다. 수산과학원에 전시된 그런 상품들을 보면 겉에 온통 영어로 찍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굴을 훈제하거나 통조림으로 만드는 건 상상할 수 없지만 외국은 전혀 안그런 듯하다. 맛은 어떨까? 한 번 먹어보고 싶어지는데.

어느덧 버스는 해안도로를 달리고 달려 통영시에 이르렀다. 버스 다니는 길 옆, 배 한 척이 달린다. 통영대교와 충무교 밑을 지나 미륵도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통영 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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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4] 통영 운하를 달리는 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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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5] 통영항으로 연결된다.


3편에서도 썼지만, 이 운하는 해저터널을 지나 동서를 연결한다. 원래 해저터널이 있던 곳은 판데목이라 해서 썰물때는 미륵도가 육지와 연결되도록 길이 열리던 곳이다. 이곳에 판 운하는 통영시의 동서를 간단하게 연결해주고 있다. 지도를 보면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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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6] 붉은 화살표가 통영운하가 뚫린 곳이다.


위성사진은 구글 어스에서 찾은 것으로, 붉은 화살표가 통영운하다. 사진에서 보듯이 동서를 연결해준다. 그리고 저 화살표 지점은 운하가 생기기 전에는 썰물때는 육지가 되던 곳이다. 킬 운하가 덴마크와 스칸디나비아 반도 사이의 좁은 해협을 돌고 돌아 대서양으로 가는 항로를 크게 단축시킨 것처럼, 통영운하도 밀물때까지 기다리거나 상당히 큰 섬인 미륵도를 빙빙 돌아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미륵도 왼쪽에는 길게 돌출한 작은 반도까지 있다. 저기까지 돌려면 의외로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뱃사람들 입장에서는 연료비도, 시간도 단축시켜주니 많이 이용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운하란 이런 곳에 파는 곳이다. 한반도 지형에서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대운하 따위 말고 말이다. 대체 명박이 머리 속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그런데, 해저터널과 관련해서 통영운하를 판 주체가 일본이다. 지난 번 글에서 이곳의 옛날 지명이 "판데목"이었다고 했지만, 이 이름의 기원이 한산대첩때 패한 왜군들이 이곳으로 도망쳤다가 썰물이라 뱃길이 없자 땅을 파고 물길을 뚫어 도망쳐서 나온 말이라고 엔사이버에 나왔다. 실제 그런지 다른 문헌을 통해 확인해봐야겠지만,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자신들의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이곳에 해저터널을 만들고 운하를 판 일본인들의 치졸함에 혀가 내둘러진다. 이 통영운하는 1932년에 해저터널과 비슷한 시기에 팠다고 한다. 1927년에 운하를 파기 시작해서 5년 6개월만인 1932년에 완공했다 한다. 해저터널도 1932년 완공이다. 같은 위치에 있는 해저터널과 운하가 같은 해에 완공된 것이다. 굳이 있던 다리를 철거하고 해저터널을 만들고, 썰물때는 육지가 되던 곳을 파서 운하를 만든 것을 과거의 아픈 기억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친 걸까. 이건 순전히 필자 상상이다.

점심은 "통영비빔밥"으로 해결하고, (별 거 없었다. 그냥 비빔밥에 두부가 추가된 정도였다. 낚였다 -0-;;) 한산도로 가는 표를 샀다. 한산도에 들러서 큰 실망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상태로. 한산도로 가는 배는 자동차도 운반하는 카페리다. 한산도는 큰 섬이어서 차가 다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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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7] 전차상륙정 LST를 연상시키는 카페리. 그냥 정박 중이던 배에서 찍은 것으로 실제로 한산도로 가는 배는 다른 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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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8] 저렇게 선수를 들이밀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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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9] 저렇게 올라탄다. 사람들이 먼저 타고 차들이 탔다.


카페리의 기원은 아무래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만들어진 전차상륙정 LST가 기원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영어위키피디어를 찾아보니 기원이 무려 183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33년이니 당연히 자동차는 아니고, 기차를 운반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무래도 철도가 다닐 교량 건설 기술이 충분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강변까지 철도로 일단 온 다음에 기차를 통째로 배에 실어서 건너편으로 옮기면 역시 철도로 곧장 기차가 달렸다. 아래 사진처럼 도킹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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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 1943년 디트로이트에서 "열차 페리". 도킹하는 모습이다. (출처:위키피디어)

아래 사진처럼 옮겨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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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1] 교량대신 배로 강을 건너는 기차. (출처:위키피디어)


노르웨이에는 아직 이렇게 기차를 배로 옮기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최초의 "열차 페리"는 1833년 스코틀랜드에서 운행을 시작했고, 미국도 1836년에 운행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거의 철도 역사와 함께 시작한 셈이다. 그래서 이름도 "train ferry"다. 강은 건너야 하겠고, 철도가 다닐 교량을 놓을 기술은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저런 걸 만들어낸 모양이다. 역시 궁하면 통하는 법인가. 페리들은 배 바닥을 평평하게 만들어 강변이나 호숫가에 바로 댈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니,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차 및 장갑차, 자동차들을 해변에 상륙시키기에도 딱 좋은 구조를 가진 셈이다. 순수 민수 기술이 군사용으로 전환된 사례인 셈이다. 물론 철도가 다닐 수 있는 교량을 놓을 수 있는 토목 기술이 발전하면서 "Train Ferry"는 쇠락했겠지만 말이다. 다만, 바다를 넘어 오갈때 자동차를 옮기는 "Car Ferry"가 되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도버 해협 해저에는 해저 터널을 뚫어 기차가 직접 오가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Train Ferry"가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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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2] 노르웨이에 아직 남아 있는 "열차 페리". (출처:위키피디어)

이것들이 남아 있는 이유를 조심스레 추측해보면, 노르웨이 특유의 빙하 지형인 피요르드 때문이 아닐까 싶다. 워낙 수심도 깊고, U자형의 깍아지른 절벽 지형이지만 철도 교량을 놓을 경우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을 정도로 기차가 다니는 건 아니어서 그냥 이 구식 방식을 쓰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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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3] 여기가 통영시 시민문화회관일 것이다. 가보지는 않았다.


한산도로 가는 카페리는 한산대첩이 벌어졌던 해역을 지난다. 어디선가 낚시꾼들을 태운 배가 무심히 지나갈뿐, 아무런 표식은 없다. 전날 미륵산에서 봤던 해전 상황도로 그냥 유추할 뿐이다. 같은 배에 탔던 관광객들도 지금 지나가는 곳이 한산대첩이 벌어졌전 곳인지 아는 지 모르는지 관광객들은 주변 풍경 감상하느라 정신없고, 지역 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은 그날 국회에서 소고기 수입 개방 청문회 중계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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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4] 바다낚시를 나가는 건지, 끝내고 돌아오는 건지 모르겠는 낚시배. 뒤로 충무마리나리조트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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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5] 바다동굴이 있을 것 같은 절벽. 아마 하죽도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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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6] 저기도 그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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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7] 한산대첩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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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8] 거북선 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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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9] 거북선 등대.



만 안쪽으로 들어서자 한산대첩 기념비와 거북등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다. 한산대첩기념비는 전투가 벌어졌던 곳을 내려보며 서 있고, 거북등대는 한산섬의 만(滿) 입구에 세워져 있다. 정말 거북선 모양이다. 밑은 온통 바위로 채웠나? 거북등대를 지나자 곧 배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자, 한산섬의 버스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착장에서 출발해서 한산섬 전체를 빙 도는 버스다. 그걸 타고 안쪽으로 가볼까 했지만 제승당부터 일단 돌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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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0] 제승당 가는 도중 한산만을 향해 한 컷. 선착장에서 제승당 입구까지는 말발굽 모양이다. 사진 오른쪽에 작게 보이는 기와 지붕의 건물이 매표소다. 제승당 입구는 왼쪽으로 좀 더 가야 한다.


매표소에서 실제 입구까지는 말발굽 모양을 이룬 한산만을 빙빙 돌아 수백미터를 더 가야 한다. 지도에서 직선 거리로는 약 300m지만, 실제 걸어야 하는 거리는 2배가 넘는다. 제승당 입구에 들어서면 "이곳은 성지이므로 경건히 참배해주십시오"라고 되어 있다. 거의 신앙 분위기다. 단군상 목을 자르는 기독교 신자들이 여기는 그냥 놔두는 이유는 뭘까. 예전에 임진왜란 당시 왜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가 가톨릭 신자였다면서 과연 이순신이 좋은 사람이냐, 는 황당한 글이 떠서 물의를 일으킨 적도 있는데 제승당을 성지라 해놓은 걸 왜 그냥 놔둘까? 그런 생각을 하며 제승당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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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1] 이순신 장군과 휘하 수군이 사용했다는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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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2] 여기가 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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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3] 수루에는 저렇게 그 유명한 이순신 장군의 시조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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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4] 수루에서 내려다본 앞바다. 이곳이 이순신 장군 통제영이니 이곳에서 정박한 판옥선과 거북선들을 내려보았을 것이다. 모든 군선들이 이곳에 몰려 있지는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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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5] 제승당 내부. 용산 전쟁기념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천자총통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냥 그것뿐이었다. 뭐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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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6] 제승당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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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7] 제승당 전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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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8] 제승당과 수루. 수루 왼쪽에 있는 것은 한산대첩 전투 경과를 묘사한 안내판이다. 언제 만들어졌는지 모를 정도로 낡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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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9] 충무사. 이순신 장군을 모신 수많은 사당들 중 하나다. 물론 임진왜란 당시에는 없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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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0] 충무사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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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1] 충무사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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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2] 장군이 활쏘기를 연마했던 한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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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3] 과녁은 건너편에 배치되어 있다.



제승당을 쭉 둘러보면서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고, 장군이 활쏘기를 했다는 한산정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기 시작했다. 사진에 찍힌 것이 전부다. 거의 없다. 볼 거리가 없다. "한산섬 달밝은 밤에~"로 유명한 수루와 제승당, 유허비, 한산정 등이 전부다. 수루는 그렇다 치고, 제승당 안에는 화포와 그림 몇 개가 전부다. 제승당은 과거 삼도수군통제영이 한산도에 있었을 당시 지휘본부였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해군 작전사령부 급이다. 매년 해군 참모총장과 해군사관학교 생도들도 이곳에 온다고 한다. 그런데 제승당 안에는 전쟁기념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포와 그림 등으로 채워져 있을 뿐이다. 실망감을 금할 수 없다.

제승당이 해군작전사령부나 해군본부 격인 건물이라 하여 방문한 것인데, 결국 본 것이라고는 달랑 목조건물이다. 제승당 관련 통영시의 웹사이트에서는 당시 기록을 찾을 수 없어서 분명히 주변에 부속 건물들이 있었을텐데 확인할 수 없다고 되어 있다. 사실 지금 있는 제승당도 정유재란 당시 불타서 없어진 것을 1739년에 중건하고 1976년 정화사업 당시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 기록이 없으면 완전한 복원을 하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변명처럼 들린다. 이순신 장군이 활쏘기를 연마했다는 한산정에는 건너편에 국궁용 표적판이 3개 세워져 있지만, 한산정 자체에는아무 것도 없다. 당시 사용한 활과 화살의 복제품이라도 전시해놓으면 어디가 덧난다더냐?

게다가 완전한 복원은 둘째치고 이순신 장군의 후손으로서 통제사를 지냈던 사람들의 공덕비가 그곳에 옮겨져 있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1976년에 정화사업을 실시하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라는 내용의 문구가 새겨진 정화사업 기념비가 떡 하니 자리하고 있는 건 또 무엇인가? 대통령이 직접 지시를 해서 정화사업을 한 것이 기념비까지 세워 30년 넘게 대대손손 기념할 일인가? 대통령 지시가 없어도 지역을 책임지는 행정관청에서 관광자원 확보라는 측면에서 먼저 추진했어야 할 일 아닌가. 거의 북쪽에서 김일성이 만지고 간 물건이라며 유리상자안에 보관하여 전시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개념의 기념비 아닌가.

사실 뒤집어놓고 보면, 그렇게 "성지"임을 강조하는 곳을 대통령의 직접 지시 이후에 정화사업을 벌였다는 것은, 그만큼 그때 당시 통영시 공무원들과 문화재 관련 중앙부처가 일 안했다는 얘기밖에 안된다. 일안하고 팅자탱자했던 것이 그게 그렇게 자랑스러운가? 그러면서 입장료는 꼬박꼬박 받는다. 돈이 아깝다. 통영과 한산도를 오가는 여객운임과 입장료, 그리고 시간들을 생각하면 다시는 한산도를 가고 싶지 않다.

한마디로 통영시는 무성의하다.

선착장에서 내리면 "탐방지원소"라는 곳도 있고, 상주 인원도 있긴 하다. 그 앞에는 한산도의 유적지들에 대한 간단한 안내판도 하나 붙어 있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탐방지원센터가 준비한 자전거 체험 코스가 있지만, 한산도를 절반만 돌아보고는 끝이다. 지원센터에서 받은 2개의 팜플렛에는 한산도 섬 안에 있는 조선 수군에 대한 설명은 없다. 한산도 지도도 한산도 안의 유적지 설명보다는 통영시 전체의 관광지에 대한 설명이 더 많다. 통영시 전체에 대한 안내라면, 이미 통영 시내의 관광안내소에서 받았다(시내의 관광안내소에서는 한산도 지도는 배포하지 않는다). 한산도 지도에는 그럼 한산도 내의 유적지를 중점 설명해줘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거의 없다. 제승당은 설명이 있지만, 제승당 곳곳에 세워져 있는 안내간판과 내용은 다를 것도 없다. 탐방지원소에 상주하던 젊은 친구는 공익같던데 그 친구한테 분노를 쏟아낼 일도 아니어서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제 아무리 성지라고 외쳐도 한산도의 제승당과 한산도 일대는 성지이기에 앞서 유적지고 사적지다. 임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군관들, 그리고 이름없는 조선 백성들이 수군이 되어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도 거의 없이 자급자족하며 (한산도 옆에는 당시 사철을 채굴하던 광산도 있었다. 물론 무기 제조를 위한 것이다) 힘겹게 왜적과 싸웠던 곳이다.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는 이유는 썰렁하기 그지 없는 광경을 돌아보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이 어떻게 싸웠는지 알고 싶어서일 것입니다. 굳이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전쟁기념관 같은 곳에도 다 있는 그런 것들이 아니다. 발상의 전환과 아이디어로 관광객들과 지역 주민들에게 모두 이익이 될 수 있는 방법들이 있음에도 그걸 생각해내고 실천해야 할 의무가 있을 공무원들부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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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4] 한산도, 견내량, 통영시, 거제도.


위 사진은 제승당 일대이다. 붉은 원이 제승당이 있는 위치다. 제승당의 수루가 내려보이는 바다는 한산만이다. 남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이라 해서 굴곡도 심하고 크고 작은 만도 많은데 한산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제승당 앞도 사진에서 보다시피 말굽 모양의 만을 이루고 있다. 제승당과 매표소 간 직선거리와 실제 걸어야 하는 거리는 거의 3배 정도 차이난다. 수루에서 내려보이는 앞바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의 함대가 정박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수군 군선이 이곳에 정박했을리는 없고 가까운 곳에 분산 배치되어 있었겠지만, 어차피 본영이니 함대 일부는 정박했을 것이다. 사실 이 만에는 거의 배가 다니지 않는다. 필자가 갔던 날에도 어선도 안보이고, 통영을 오가는 여객선 선착장은 한참 떨어져 있다. 관광 유람선이 다닐 뿐, 어선도 수루에서 내려보이는 바다에는 다니지 않는 것 같다.

제승당 앞쪽 바다(수루에서 내려보이는 곳)에는 어차피 다니는 배도 별로 없으니 수루에서 내려보이는 곳에 임진왜란 당시 사용했던 양국 군함들(판옥선, 거북선, 척후/전령 역할을 맡은 소선, 고바야, 세키부네, 아타케부네 등)을 재현해놓고 정박시켜놓아도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다. 제승당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그 배들에 들어가 배 안팎을 직접 돌아보며 며 "아 이런 배로 싸웠구나"를 문화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보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것들로만 전시해놓는 게 아니고 말이다. KBS에서 <불멸의 이순신>을 찍을때 배 건조에 참가한 업체들이 있을테니, 당시 군함들을 재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일본 군함들은 일본에 찾아보면 그때 사용한 군함들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의지만 있다면 국고 지원으로도 가능할 것이고, 통영시민들의 성금으로도 가능할 것이다.

거북선은 축소판이지만 통영항 강구에 이미 1척이 있고, 실제로 운항하기도 하니 그걸 그대로 써도 될 것이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배 안을 돌아볼 수 있는 구조는 안되어 있고, 축소판이니 새로 만드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아뭏튼 그렇게 복원한 군함들을 정박시켜놓는 것만으로도 수루에 올라선 관광객들이 자신이 이순신 장군이 된 것같은 기분에 젖어들게 말이다. 수루 앞 바다는 섬에서 뻗은 육지와 작은 섬 등으로 인해 웬만큼 큰 태풍이 아니고서는 아마 큰 피해는 없을 것이다.

또, 실제 한산대첩의 진행 경과에 따라 견내량에서 출발하여 한산도에 이르는 유람선을 이용한 관광코스를 개발하는 것이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같다. 견내량에 정박한 왜군, 그들을 유인하는 판옥선, 쫓아오는 와키자카 함대, 신나게 쫓아오다가 학익진으로 포위당한 후 격멸당하는 과정 등을 직접 그 경로를 따라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드는 관광코스를 못만들 이유가 없지 않은가? 제승당에서 동쪽으로 맞은 편에는 개미목이라고 있다. 생긴 지형도 그렇거니와 한산대첩 후 왜군 패잔병 400여명이 기어올라가는 모습이 개미를 닮았다고 해서 붙은 지명이라고 한다. 거기까지 가는 것이다. 한산대첩의 마지막이 그랬으니까.

한산도 곳곳에는 잘 엮으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너무 활용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륵산 정상 근처까지 올라가는 한려수도 케이블카도 좋지만, 이런 곳에 쓸 돈은 없는 건가? 통영시 재정에도 도움될 수 있고, 초중등학생들을 위한 수학여행 거리로도 충분하며, 개인 관광객들도 당시 이순신과 조선 수군들을 더 느끼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있을텐데 (한산도는 크지 않은 것 같지만 걸어서 일주하기에는 부담스럽다. 지원센터 직원도 극구 필자를 만류했다.) 지금처럼 설명서나 관광안내도도 부실하니 기가 차다.

기록이 없다면, 찾지 못했다면 (아니면 찾을 의지가 없다면) 당시 한산도에 주둔한 조선 수군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디오라마나 당시 벌어진 해전들의 디오라마도 설치하여 볼거리도 제공하고, 보다 생생하게 당시를 느끼게 할 수도 있지 않은가. 한산정에서는 당시 사용한 활과 화살을 두고 직접 쏴볼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다. 방문객이 적어 사람을 상주시키기 곤란하다면 적어도 한쪽에 당시 사용한 활과 화살 등을 전시해놓을 수도 있다. 제승당 내부도 전쟁 후 두룡포(통영의 옛 이름)에 세워진 통제영 본영의 기록들을 참조하여 상상하여 만들어볼수도 있지 않은가. 제승당 안에 배치가 곤란하다면 모형 디오라마도 좋을 것이다.

아뭏튼 쓸데없이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 의한 정화사업을 추진한 것을 기념하는 기념비"따위는 철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기념비는 30년 동안 대대손손 보존되어야 할 가치가 없다. 대통령의 지시 하나 하나가 일일이 기념비 세워서 기념할 일이 아니지 않은가. 이승만 부터 시작해서 2MB까지 하면 대체 몇 개나 기념비를 세워야 하나? 대통령이 누가 되었건 그건 "저 일 안했어요!!!! 잘했죠!!!" 라고 외치는 꼴이다. 물론 다카키 마사오가 그런 기념비까지 세우라고 지시했을 가능성은 낮아보이지만, 당시 공무원들이 알아서 박박 충성경쟁을 한 것 같은데, 지금이야 시대도 바뀌었으니 썰렁한 것보다는 보다 제승당을 찾는 관광객들과 통영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세워서 한산도 전체의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을 복원했으면 한다.

그렇기는 한데, 내가 이렇게 떠들어대봐야 통영시가 나서서 뭘 추진할 가능성에 대한 기대나 환상은 물론 없다. 그러나 지금 그쪽에서 뭔가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전제 하에서, 또 이명박이 뭐라 뭐라 호통 한 마디한다면, 바로 그날부터 부랴부랴 번갯불에 콩볶아먹듯이 준비할 게다. 그렇게라도 된다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또 씁쓸할 게다. 150m 뒤의 투표소를 놔두고 직선거리 1.2km를 걸어가게 하는 것이 공무원들이니 말이다.

한산섬 전체를 한 바퀴 돌려던 생각도 깔끔하게 지워버렸다. 지친 탓도 있었지만, 제승당에 너무 실망이 커서였다.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을 가져버렸다. 걸어서 일주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기엔 섬이 좀 커보였다. 아뭏튼 이래저래 핑계를 대고 한산섬에서 나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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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5] 한산섬에서 나올때, 요트를 즐기는 사람들. 부럽다 ;;


사용자 삽입 이미지NIKON D40 | 2008:09:05 14:51:03

[사진46] 다른 요트인데, 단체 관광객이 올라탔다. 이 요트는 쌍동선이다.


한산섬에서 나와 통영시로 돌아와서 세병당과 향토박물관을 둘러보고 그냥 통영시를 떠났다. 출발할때와 달리 등대섬도 못보고, 제승당에서는 무척 실망하고, 엉망이 되버렸다. 등대섬을 못간 건 조석 시간을 맞추지 못한 탓이지만, 한산도를 들르지 않고, 그냥 비진도에서라도 하룻밤 묵었어도 좋았을뻔했다는 씁쓸한 생각을 하며 통영을 떠났다.

다음엔 어디로 갈까. 우리나라도 가볼 곳은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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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경철 2009.06.01 14:09 신고 Modify/Delete Reply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통영시의 고위층 공무원이 꼭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과 휘하 장군, 군졸, 백성들의 힘들었던 삶을 재현하여 좋은 역사적 교훈을 우리 세대에서 다시 느끼며 그분들의 고마움을 생각하는 좋은 학습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 Favicon of http://historytravel.tistory.com BlogIcon deutsch 2009.06.10 02:11 신고 Modify/Delete

      저도 제 생각에 동의한통영시 공무원이나 통영시청에 아는 사람이 있는 분이 봐서 의견을 전달해줬으면 하네요, 가서 보고 너무 실망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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